
Moonlight
WINCEST
열일곱 생일. 샘은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손길에 눈을 뜬다.
“다녀왔어.”
오늘도 샘의 인사를 받아주는 목소리는 없었다. 가져갈 것 하나 없는 빈궁한 살림살이, 문단속을 할 필요도 없이 대충 닫고 갔던 아침의 모습 그대로인 조용한 집안이 샘을 맞았다. 교회 옆에 딸린 허름한 오두막을 집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지. 그나마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때라면 온기라도 흐를 테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주는 서늘함은 계절조차 잊게 했다. 샘은 땀에 젖은 몸을 살짝 떨었다. 부러 늦게 들어온 보람도 없었다.
존과 딘이 사냥을 떠난 지 벌써 2주일이 지났다. 평소라면 돌아오고도 남았을 시간이었지만, 두 사람은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너른 거실에 긴 카우치와 탁자 하나, 그 앞의 낡은 TV가 전부였다. 카우치에 긴 몸을 늘어뜨리고 누워 샘을 맞이하던 초록색 눈동자가 어른거리다 사라졌다. 눈곱만큼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샘의 어깨가 축 처졌다.
-일주일이면 충분하지.
우쭐대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돌아보면 그날은 괜히 불안했었다. 형과 아버지와 사냥을 떠나던 날엔. 손톱만 한 작은 달 아래서는 형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며칠 뒤면 볼 걸, 형은 그날따라 유난히도 샘과 눈을 맞추려 했다. 아버지와 한바탕 한 동생이 걱정되어 부러 살갑게 구는 것이었지만 부루퉁하게 입이 나온 샘은 끝내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형은 저 달이 반쯤 차오를 때쯤 돌아오겠다고, 그러니 얌전히 학교 다니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대꾸하지 않았지만 샘 역시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짓말. 샘이 불만스럽게 하늘로 시선을 들었다. 달은 이제 어두운 밤을 밝힐 만큼 둥그렇게 차올라 있었다. 주위를 밝히는 달빛을 불편한 눈빛으로 더듬던 샘은 이내 시선을 내렸다. 어둠 속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게 된 이후로 샘에게 보름달은 그저 불안한 존재일 뿐이었다. 푸르게 퍼져나가는 그 아름다운 빛 속에 악한 기운을 깨우는 힘이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초자연적인 것들을 상대하는 형과 아버지는 이런 달이 뜨는 밤 더욱 위험해지고는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게 이렇게 늦어지는 것 역시 그 이유 때문은 아닐까. 연락이 닿지 않으며 시작된 불안이 익숙하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심장이 뜯긴 채 숲속에 버려진 아버지와 형이, 생기를 잃고 텅 비어버린 눈동자를.
“씨발.”
샘은 눈을 깊이 감았다. 아니, 별일 없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생각하지 마. 스스로 다짐하듯 샘은 집안으로 들며 문을 닫아 달빛을 차단했다. 거친 손속에 샘의 뒤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그러나 달빛은 거실 한가운데까지 펼쳐져 있었다. 불을 켤 필요도 없이 샘은 가방을 대충 던진 후 탁자 앞에 자리를 잡았다. 달 보며 걱정하는 것보다 연결되지 않는 전화번호일지언정 눌러보는 것이 나았다. 신호는 길었다. 죄 물어뜯어 놓은 손톱이 또다시 샘에게 혹사를 당했다.
이틀 전부터는 형과도, 아버지와도 연락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이건… 좋지 않다. 제 가족의 일이라는 것이, 언제 목이 날아가고 심장이 잡아 뜯길지 모르는 전쟁터 한가운데 던져지는 것임을 생각해볼 때 더더욱. 그에 불만하며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는 횟수가 잦아진다고 한들, 샘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버지 눈에 샘은 어린애에 불과했다. 그래서 샘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열일곱 살. 정확히 세 시간 후면 열일곱이었다. 그런 샘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아직 너무도 먼 일처럼 느껴졌다. 어른이 되면, 딘 정도의 나이만 되어도 샘은 절대 딘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충직한 군인 따위 되어줄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보름달이 뜨는 밤 늑대인간을 쫓느라 숲속을 누비며 심장을 뜯길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것이다. 생일날 가족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약속할게. 네 생일 전까지는 무조건 돌아올 거야.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지만 딘 윈체스터는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 명백했다. 그는 의식적으로 제 생일을 머릿속에서 털어내었다. 어차피 다정함이나 섬세함과는 담쌓은 남자들만 사는 집안에서, 생일이라고 특별히 기대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죽지 않고 살아낸 어제나 내일과 같은 하루일 뿐. 다만 샘의 생일날 아침이면, 아침잠 많은 딘이 가장 먼저 일어나서 팬케이크를 구웠다. 고소한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는 그날 아침이면 샘은 정상적인 가족의 삶이라는 걸 상상해보고는 했다. 비록 어그러지고 여기저기 타버린 팬케이크라고 해도. 그마저도 올해는 기대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수화기 너머 높낮이 없는 기계음만이 계속되었다. 다리를 달달 떨며 손톱 하나를 죄 씹어 먹은 샘이 엄지손가락을 물었다. 이대로 딘과 아버지를 잃게 된다면, 세상에 완벽히, 혼자 남게 된다면 어떡해야 할까. 그것도 생일날 그 소식을 들어야 한다면 말이지. 샘은 조소했다. 하지만 이내, 아니. 고갤 저으며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한낮이라 해도 좋을 만큼 더위가 샘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숨이 턱턱 막혔다.
“후….”
옮겨 다니는 것이 익숙한 간소한 살림살이가 전부인 마당에 더위를 식혀줄 가전제품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다. 그저 견뎌내는 밖에. 올해 여름은 유난스럽다 할 정도로 더위가 심상찮았다. 그리고 샘은 가만히 있어도 열이 푹푹 오르는 나이-딘의 표현에 의하면 지랄발광하는 열일곱 살-이었다. 게다가 안으로부터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전쟁을 신경 써줄 만큼 여유 있는, 평범한 가족과는 달랐다. 마음을 터놓는 대화나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는 시간 따위 기대할 수 없었다. 형과 아버지에게는 샘 혼자 치르고 있는 전쟁보다 실제로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현실 속 전쟁이 우선이었다. 해결하지 못한 화는 종종 밖으로 터지고는 했다. 속에서부터 오르는 열이 시시때때로 곁에 있는 사람들을 찔러댄다는 얘기였다. 2주 전, 형과 아버지가 사냥을 떠나던 날에도 그랬다.
늦은 밤, 샘은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졸음을 채 떨쳐내지도 못한 샘에게 더플백 하나를 짊어진 아버지는 딱딱하게 명령했다.
-준비하거라, 샘. 지금 출발해야 해.
그것으로 끝이었다. 샘은 충분히 설명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내일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이나, 성적에 반영되는 중요한 에세이 발표가 있다는 건 아버지에겐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버티는 것이었다. 샘은 고집스럽게 버텼고, 아버지는 샘의 ‘어리광’을 참아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깟’ 에세이 발표와 사람들 목숨을 두고 고민하는 것 자체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인사였다. 누구 하나 양보하는 이 없이 둘은 마지막까지 언성을 높였다.
-위험한 사냥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이야. 이번에는 네 징징거림 들어줄 여유가 없다, 샘.
-다른 아버지라면, 그렇게 위험한 데 자식을 밀어 넣지 않을 거고요. 아버지 때문에 저나 형이나 길바닥 어디서건 뒈져버릴 거예요.
야차 같은 얼굴로 아버지가 샘을 노려보았다. 날카로운 말이 찔러버리는 건, 그러나 이번에도 그 곁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딘이었다. 아버지의 편도 그렇다고 샘의 편도 들어주지 못하던 그의 얼굴에 쨍, 하고 금이 갔다. 가만히 있어도 순간순간 열이 불뚝불뚝 오르는, 지랄발광하는 나이. 풀어내지 못한 샘 안의 화를 받아내어야 하는 건, 열에 아홉은 형이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아버지라는 사람은 좀 더 안전하게 우리를 키울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인지, 세상 사람들을 왜 우리가 다 구하려 드는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화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동안 그것을 오롯이 받아내고 있는 형도 지칠 것이었다. 그러나 딘은 참을성 있게 샘을 설득하려 했다. 어머니의 복수뿐만이 아니라고, 사람들을 구하는 건 가치 있는 일이라고, 그리고 아버지도 그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샘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몰라서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얘기를 해, 샘. 궁둥짝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지랄하지 말고, 뭐가 문젠지 제대로 말을 하라고.
-얘기하면? 형이 뭘 해줄 수 있는데.
딘이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를 때면 샘은 이마를 덮는 앞머리로 제게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해버렸다. 완벽한 대화 거부. 딘은 씩씩거리기나 하며 말이 통하지 않는 똥강아지에게 대거리하는 걸 포기했다.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딘에게조차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가 오로지 복수와 사람들을 구하는 데만 골몰하는 동안 정작 아들은, 샘 자신은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어떤 지옥 속에서 스스로를 죽여가고 있는지. 말할 수 없었다.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일정하게 계속되던 기계음은 어느새 음성 메시지로 넘어갔다. 샘은 혹사당하는 손톱을 놓아주고 목소리 가다듬었다.
“나야. 통화한 지 이틀이나 지난 거 알아?”
정확히는 형이 일방적으로 음성 메시지를 남긴 것이지. 딘 쪽에서는 짐 목사를 통해 샘의 소식을 듣고 있을 터였다. 이틀 전부터는 짐 목사에게조차 연락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샘은 내내 딱딱하게 굴었던 자신에게 짜증을 내며 해야 할 말을 골랐다.
“…지금쯤이면 내가 걱정할 거란 거 알 거 아니야. 혹시 아직 화났어? 짐 목사님은 별일 없을 거라 하셨지만, 그래 나도 알아. 괜찮겠지. 당연히 그렇겠지만…. 이렇게 연락이 안 되면 걱정할 수밖에 없잖아. 대체 언제 와? 오긴 오는 거야? 약속 못 지킨 건 괜찮아. 조금 더 늦어져도 되니까 이거 들으면 바로 연락해줘.”
아무 일 없었으면 벌써 연락이 왔을 터였다. 응답받지 못한 음성 메시지가 쌓여가고 있었다. 머릿속에 차고 드는 불안한 생각으로 첫 번째 메시지를 남길 때만 해도 뾰족하게 날 서 있던 목소리가 눈에 띄게 기운을 잃고 낮아져 있었다. 목소리 톤 변화 하나로 귀신같이 기분을 알아차려 주던, 다정하게 걱정하는 목소리는 이번에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수화기를 놓은 샘이 탁자에 팔을 기대고 버석거리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살다 콱 뒈져버릴 거라고.
딘에게로 향했던 날이 선 목소리가, 곱지 못한 제 시선이 오롯이 자신에게 돌아와 심장을 쿡쿡 찔렀다. 그날 딘이 어떤 표정을 지었던가. 형은 거짓말에 능숙했다. 카드 사기를 차치하더라도 자료 조사를 위한 ‘백색’ 거짓말 같은 건-딘 표현에 의하면-그들에게는 일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능숙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날 형은… 마치 칼에 찔린 사람처럼 눈에 띄게 움찔하였다. 커다랗게 벌어진 눈에는 숨기지 못한 상처가 선연했다. 빤히 눈에 보인 그것에 대해, 샘은 끝내 사과하지 않고 딘을 보냈다.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가가 뜨끈해졌다. 그것을 애써 무시하듯 샘의 손이 버릇처럼 젖은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
마치 낮처럼 환한 달밤이었다.
전지자가 된 듯한 샘 앞으로 거대한 숲이, 빽빽한 수풀을 헤치며 달리고 있는 남자가 펼쳐졌다. 허억허억. 남자가 내쉬는 가쁜 호흡처럼, 지켜보는 샘 역시 턱턱 숨이 차올랐다. [크르릉.] 그리고 그런 남자를 뒤쫓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샘이 볼 수 있는 건 다만 날카롭고 긴 손톱이었다. 그것이 당장이라도 잡아챌 듯 남자의 옷깃을 스쳤다. 간발의 차이로 괴물의 손아귀를 벗어나기를 몇 차례. 안타깝게도 남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지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나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멈추면 안 돼. 도망쳐! 제발.] 애원해본들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았다. 샘이 할 수 있는 건 겨우 안타까움에 속을 바짝바짝 태우는 것뿐이었다. [악!] 끝내는 불안하던 남자의 스텝이 꼬였다. 수풀 위로 넘어진 남자가 괴물을 경계하듯 몸을 돌렸다. 내내 뒷모습만 보이던 남자의, 겁에 질린 초록색 눈동자가 한껏 벌어져 있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딘의, 형의 셔츠가 괴물이 손톱에 종잇장처럼 찢겼다. 만족하지 못한 듯 괴물은 멈추지 않았다. [으악!] 산채로 딘의 심장을 쥐어뜯으며 괴물이 얇은 입술을 늘어뜨려 웃었다. 잘 차려진 성찬을 앞에 둔 듯 만족감이 부풀어 올랐다. 아래가 빠르게 단단해졌다.
딘이 원망 가득한 시선으로 괴물을,
…샘을 바라보았다.
“샘.”
“으…윽….”
“샘! 새미, 일어나!”
“으윽!”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손짓에 샘이 몸을 움찔거리며 눈을 떴다. 곧장 환한 달빛이 시야를 찔러왔다. 샘은 급히, 다시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새미,”
그러고 익숙한, 아주 그리웠던 목소리가 이어졌다. 샘의 눈꺼풀이 조심스레 열렸다. 달빛을 받고 서서 형이 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샘은 잠시간을 멍하니 그 꿈결 같은 장면 속에 있었다. 눈앞의 딘이 현실인지, 그도 아니면 악몽의 연장선 어디쯤인지 가늠하며. 눈을 깜빡이는 샘을 향해 딘이 말했다.
“이번에도 안 일어나면 입맞춤이라도 해야 하나 했더니.”
“…딘?”
자다 일어나 갈라진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굳었던 얼굴 위로 그제야 비스듬한 웃음이 걸렸다. 짜증 나는 농담에 쏘아붙일 정신도 없이 샘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맞지 않는 카우치에 구겨 넣고 잔 몸 구석구석이 삐그덕거렸다.
“불편하게 왜 여기서 이러고 자. 그러니까 이상한 꿈이나 꾸지. 너 땀에 젖어서 엉망이야,”
“딘!”
샘이 팔을 뻗어 형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말을 채 다 맺지도 못하고 샘을 받아내느라 딘은 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주춤거렸다. 단단한 허리가 품 안에 꽉 들어찼다. 딘이었다. 미간을 좁히고 엄하게 말하는, 잔소리에 담긴 걱정을 숨기지 못하는 형. 얼굴 위로 드러난 작은 표정 변화 하나로 제가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형이었다.
“그새 아기라도 된 거냐, 새미보이?”
머리꼭지 위에서 하하, 웃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때까지도 몽롱하던 정신이 맑아졌다.
“…샘이야.”
매달리다시피 한 허리를 놓아주는 대신 바짝 끌어안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화약 냄새와 마른 나뭇가지 냄새, 흙냄새가 섞인 딘의 체취가 샘에게로 옮겨졌다. 그제야, 근 2주 만에야 제대로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렇게나 갈망하던 안정감이, 인정하긴 싫지만 늘 긴장하여 꽉 죄어있던 심장으로 녹진하게 퍼져나갔다. 아이 같다고 놀리는 형도 이 순간만큼은 상관없었다. 커다란 손이 머리칼을 쓰다듬는 것도, 평소라면 손도 못 대게 했겠지만 그냥 두었다. 당장엔 지난 2주간의 불안과 걱정을 보상받는 것이 더 급했으니.
“그럼, 그러시겠지.”
한동안 형이 안전함을, 탈 없이 제게 돌아왔음을 만끽하던 샘은 문득 걱정과 불안 속에 보내야 했던 이틀간이 떠올렸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수업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에세이 발표는 엉망이었다. 애초에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샘에게는 아닌 밤중에 내려진 명령에 맞설 핑곗거리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아버지께 했던 독한 말이, 마지막까지 딘에게 대꾸해주지 않았던 후회가 내내 샘을 괴롭게 했던 지난 2주. 샘이 딘을 살짝 밀어 고갤 들고 형을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이틀 동안이나 뭐 하느라 연락도 안 됐는데? 몇 번이나 전화했는지 알아? 음성은 왜 확인 안 했어? 사냥은 잘 끝났어? 다친 덴 없지? 왜 형 혼자야? 아버지는?”
“워워, 하나씩 물어줄래, 새미.”
딘이 양손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샘은 딘의 뒤를 살피며 아버지를 찾았다. 휑한 거실은 고요 속에 잠겨 있을 뿐 다른 인기척은 없었다. 붉은 전자시계가 12시 10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설마 이 시간에 혼자 운전했어?”
“네 형님은 베스트 드라이버시거든.”
“그래서 아버진? 아저씨랑 다 괜찮으신 거야?”
“당연하지. 아버진 임팔라가 고장 나는 바람에 바비 아저씨께 남았어. 나는… 혼자 울고 있을 꼬맹이 때문에 먼저 왔고.”
“누가 꼬맹이야. 내가 몇 살인데,”
“하하, 내 허리나 놓고 말하시지.”
반가움에 잊고 있던 열기가 단숨에 훅 차올랐다. 급히 딘의 허리를 완전히 놓았다. 그리고 그제야 천천히 형의 얼굴을 뜯어볼 수 있었다. 푸른 달빛이 소년과 남자의 경계선에 선 딘의 얼굴을 비추었다. 각진 얼굴과 그 안에 오밀조밀 차 있는 이목구비, 경계가 진한 초록색 눈동자와 여자애들이 껌뻑 넘어가던 콧잔등의 주근깨, 그리고 두툼한 입술까지. 그 스스로 아주 잘 알고 있듯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스물한 살의 딘이었다. 평소에는 죽어도 해줄 수 없는 말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보아도 참 잘난 얼굴 그대로의. 스스로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남녀 가릴 것 없이 마음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을 미모가 달빛을 받아 더 빛나고 있었다. 딘이 사람 홀리는 웃음을, 샘을 향해 씩 지어 보였다.
“음성 확인할 생각도 못 했어. 이틀간은 다들 정신없었거든. 전화기는 망가지고 아저씨 집는 들를 겨를도 없었어.”
“그래서 잘 해결된 거야?”
“이번 사냥은 정말 끝내줬어, 샘. 이 형님이 둥지를 찾았거든. 아버지와 내가 몇 사람을 살렸는지 알아? 너도 갔어야 했는데….”
딘이 우쭐한 얼굴로 사냥에 대해 늘어놓았지만 샘에겐 별로 흥미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샘은 다만 형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그 대단한 에세이 발표는 잘하셨고?”
“…몰라.”
지난 얘기를 꺼내는 초록색 눈동자에 장난기가 스며 있었다. 샘이 시선을 내리며 부루퉁하게 대꾸했다. 그런 샘 앞으로 하얀 불쑥 손이 내밀어졌다. 험한 일을 하면서도 딘이 손은 깨끗했다. 그 손을 잡는 것이 이제는 어색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어머니의 그것처럼 꽤 부드럽다는 것도 알고 있다.
“왜?”
“나가자.”
“뭐?”
낮도깨비처럼 불쑥 나타난 데 이어 이젠 남의 다리 긁는 소리였다. 이 밤중에 가자니? 어딜. 딘이 미처 되묻지도 못하고 있는 샘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어어, 딘!”
“나가자고.”
의지에 반하여 온 신경이 손끝으로 몰리는 바람에 샘은 반항할 새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딘에게 잡힌 채인 손으로부터 간질거림이 차고 올랐다. 그걸 무시하려 애쓰며 샘이 물었다.
“어딜?”
“좋은 데가 있거든.”
딘이 씩 웃으며 대꾸했다. 그 웃음에 가슴 떨리게 하던 설렘이 한순간에 차갑게 식었다. 한밤중에 갈 만한 좋은 데라면 생각할 것도 없었다. 형이 말하는 좋은 데란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술과 미녀가 넘치는 바 정도겠지. 게다가 그런 데는 미성년자인 샘을 달고 갈 만한 데가 아니었다. 데리고 간다고 한들 그곳에서 여자들과 시시덕거리는 딘을 봐주어야 하는 것? 지금 샘에겐 피하고 싶은 일 중 가장 윗부분을 차지할 만한 일이었다.
“형이 좋다고 하는 데라면 나는 관심 없어. 가고 싶으면 혼자 가. 그딴 데나 가자고 자는 사람을 깨웠어?”
샘이 형의 손을 뿌리치고 쏘았다.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열기가 속으로부터 끓어올랐다. 딘은 눈치 없이 다시 샘의 손을 잡았다. 샘은 난감한 얼굴로 다시 제 손을 잡는 형을, 그에게 잡힌 제 손을 번갈아 보았다.
“형이 좋아하는 데야 빤하잖아. 혼자 가라니까.”
“일단 가 보고 화를 내도 내. 알았어?”
마구잡이였다. 딘은 숫제 샘을 끌고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향했다. 하릴없이 딘에게 끌려가며 샘은 반항을 포기했다. 힘을 뺀 샘을 끌고 기어코 집 밖으로 나온 딘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문단속을 했다. 밖은 안보다 더 밝았다. 만월(滿月)에 든 사위가 더위에 잠겨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비스듬히 서서 형이 하는 양을 불만스럽게 보던 샘이 끝내 한마디를 더 붙였다.
“지금 몇 시인 줄은 알지?”
삐딱한 시선을 마주한 딘이 보란 듯 시계를 확인했다.
“아주 잘 알지. 그러니까 서두르자.”
“무슨 소리….”
“얼른 새미.”
딘은 더 설명하지 않고 풀쩍 뛰어 계단 아래로 내려섰다. 짧지 않은 시간을 운전해 왔을 텐데도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그는 이내 샘을 지나 앞장을 섰다.
“두고 가버린다, 새미?”
언젠가처럼 딘이 샘을 돌아보며 말했다. 더는 어물거리고 있을 수 없어, 샘은 형의 걸음을 되짚어 그와 나란히 섰다. 곁에 선 딘이 피식 웃고는 샘과 보폭을 맞추었다.
***
고작 몇 시간 전 형과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하던 샘은 이제 숲 한가운데 있었다. 쏟아지는 달빛에 눈이 익숙해진 터라 숲을 더듬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 걸음 정도 앞서 딘이 걷고 있었다. 샘은 갑자기 시작된 밤 나들이를 즐기기로 했다. 문득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존이 짐 목사나 바비에게 둘을 맡겨둘 때면 샘과 딘은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녔었다. 아이들이 갈 만한 데라야 많지 않았지만 앞장서 제 손을 붙들고 나아가는 딘은 언제나 멋진 장소를 찾아내고는 했었다. 바비의 폐차장 찌그러진 차들이 겹겹이 쌓인 사이의 공간, 교외의 버려진 작은 오두막, 혹은 깊지 않은 숲속에 자리한 동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어린애들이 가기엔 위험한 장소였지만 그때야 그런 건 알지 못했다.
-우와.
-멋지지? 여긴 우리만 아는 아지트야, 샘.
샘은 제 영웅에게 고개나 끄덕였다. 동화에나 나오는 영웅 같은 딘이, 그저 형과 저 사이에 생긴 비밀이 샘을 설레게 했다. 눈을 빛내며 말하는 형이 좋았다.
“…미쳤어.”
“내가 뭐랬냐?”
꼭 그때처럼,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샘이 순수하게 감탄하였다. 거짓말 같은 풍경이 단숨에 샘을 사로잡았다.
“이런 데가 있었다고?”
샘의 눈앞으로 눈앞에는 작은 호수가 펼쳐졌다. 이쪽부터 반대편까지 자맥질 몇 번이면 닿을 만큼 아담한 호수 위로 달빛이 부서져 일렁였다. 잔잔한 수면을 밝히는 달빛을 등지고 서서 딘이 씩 웃어 보였다. 이곳 오두막에 윈체스터가 자릴 잡은 지는 반년이 넘었다. 집에서 고작 10여 분이나 될까. 그리 깊지 않은 숲속에 이런 데가 있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같은 클래스의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적 없었다. 숲 한가운데 호수라니. 이걸 형 혼자만 알고 있었다는 게 새삼 섭섭하기까지 했다.
“찾은 지는 얼마 안 됐어. 분명히, 네가 좋아할 줄 알았지.”
딘이 뿌듯하게 말했다. 섭섭하다고, 딱히 좋아한다고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형은 익숙하게 샘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딘은 그랬다. 샘에 관해서라면 모든 것이 제 손바닥 훑듯 훤했다. 고작 네 살 반. 아버지가 아기 샘을 딘의 작은 품에 안겼던 그날 이후, 딘의 세상은 오로지 샘을 위주로 돌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샘 역시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처음에는 그 애정이 좋았고 어떨 땐 버겁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덥지 않아?”
동의를 구하는 딘의 목소리에 샘이 딘을 바라보았다. 그가 머리 위로 셔츠를 끌어 벗고 있었다. 살짝 그을린 팔뚝과는 달리 원래 피부색 그대로의 새하얀 어깨가, 잔 근육이 자리 잡은 복부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팬츠까지 벗어내는 동작이 군더더기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딘은 이내 검은 브리프 한 장만 걸치게 되었다. 벗은 상체, 목 언저리에서 샘이 준 애뮬렛이 반짝였다. 한동안 그에 시선을 빼앗긴 샘을 두고 딘이 익숙한 듯 호수에 발을 담갔다. 딘의 발끝으로부터 작은 물결이 일렁이며 호수 안쪽으로 퍼져나갔다. 아니, 잔물결은 호수가 아닌 샘의 마음속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심장을 때리는 그것에 압도당한 채로, 샘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온통 시선을 빼앗겼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사만다?”
그새 허리까지 물속에 담그고 딘이 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무 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어린애 같은 순수함을 잃지 않은 눈동자가 샘을 담았다.
“…닥쳐.”
“난 또 우리 여동생이 오빠랑 수영하는 게 부끄러운가 했지.”
“디…,”
“그게 아니면 들어오지 그러냐.”
딘이 보란 듯 허리를 숙여 머리 위로 물을 끼얹었다. 물에 젖은 더티블론드 끝으로 반짝이는 물방울이 맺혔다 떨어졌다. 물방울은 딘의 얼굴을, 어깨를 지나 상체를 적셨다. 그 모습이 마치 느린 화면처럼 샘의 눈앞에서 재생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얀 피부가 물기를 머금고 한층 하얗게 빛이 났다. 달빛이… 너무 밝았다. 순간적으로 확 오른 얼굴의 열기를 감추어주지 못할 만큼.
갑작스러운 밤 나들이에 땀으로 젖은 몸을 핑계 삼아 샘도 딘을 따라 옷을 벗었다. 남자들끼리 사는 집이라고 해서 서로의 벗은 몸을 보는 게 익숙해지진 않았다. 어느 순간 내외하기 시작한 샘 때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호숫가엔 두 사람 몫의 옷이 나란히 놓였다. 그리 깊지 않은 호숫가 쪽으로, 딘을 따라 샘이 발을 내디뎠다. 물 온도는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 알맞았다.
“어때?”
허리께까지 물이 찼을 때 딘이 샘 가까이 헤엄쳐 오며 물었다. 잘난 척하는 얄미운 얼굴이 수면 위로 떠 올라 있었다. 샘이 허릴 숙여 물을 한 웅큼 쥐었다 딘에게로 던졌다.
“큽,”
“푸흐흣,”
딘의 얼굴 위에서 부서지는 물을 보며 샘이 웃음을 터트렸다.
“야! 너!”
“크흐흐, 하하하.”
“너 죽었어!”
부지불식 간에 샘은 딘에게 붙들렸다. 딘의 긴 팔이 봐주지 않고 샘의 목덜미를 감아 물속으로 내리눌렀다. 샘은 딘의 허리를 잡아 버티었다. 물속에서 미끈거리는 상체가, 하체가 맞닿았다. 샘과 딘 주위로 하얀 물보라가 일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땀을 식힌 보람도 없이 둘 사이에 힘겨루기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깊은 밤, 두 사람뿐인 호수 위로 샘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이렇게 마음을 놓고 웃어본 지가 언젠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그만, 그만. 샘.”
몇 번이나 물에 처박히고 올라오길 반복하고서야 딘이 먼저 손을 들었다. 최근 들어 딘의 키를 따라잡기 시작한 샘이 딘에게는 이제 버거운 모양이었다. 조금 뿌듯한 마음이 된 샘을 흘겨보며 딘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어릴 때는 요만하니 귀여웠는데.”
“뭐야?”
“이젠 힘만 센 사스콰치가 되었잖아. 쯧,”
“딘!”
그는 고갤 절레절레 젓고는 샘의 말을 못 들은 척 호숫가 쪽으로 헤엄쳐 갔다. 그러고는 짙은 색의 호수 안쪽을 가리켰다.
“너, 저쪽으로 너무 가지는 마.”
“왜?”
“이래 보여도 안쪽은 깊어.”
“내가 뭐 어린앤가.”
“그러니까. 이젠 너 빠져도 못 구해. 형 말 들어.”
짐짓 엄하게 말한 딘이 샘에게서 멀어졌다. 샘도 더는 대거리 하지 않고 조용히 몸을 눕혔다. 힘을 뺀 기다란 몸이 물 위로 떠 올랐다. 이제 시선에 들어오는 건 오롯이 하늘뿐이었다. 밝은 달빛에 별빛조차 가린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물에 잠겼다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귓가로 호숫가의 다양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풀벌레 우는 소리, 딘이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찰랑거리는 물결 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스쳐 지나는 소리…. 샘의 삶과는 정반대의,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 속에서 샘은 가장 선명하게 들리는 하나의 소리를 짚어내었다. 그건 제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일정한 소리였다. 쿵쿵쿵. 소리는 점차로 커졌다.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나던 딘의 맨몸이 둥실 떠올랐다. 안 돼, 지금은. 그 소리에 당황할 새도 없었다. 어느 순간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딘?”
샘이 발 끝에 힘을 주고 땅을 짚었다. 몸을 바로 세운 즉시 주위를 둘렀다. 물 아래와 위를 오가던 동그란 머리통이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방금까지 제 시선 안에 있던 딘이 아주 잠깐 사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샘의 불안한 시선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획, 몸을 돌리는 갈급한 움직임에 물살이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거칠게 퍼져나갔다.
“딘!”
단전으로부터 형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아직도 꿈속 한가운데 있는 걸까. 이게 다 꿈일까. 악몽 속에서 건져주던 딘의 목소리도, 갑자기 시작된 밤중의 산책도 그러고 보면 죄다 이상했다. 아니, 그렇다기에는 허벅지께에서 찰랑거리는 물살의 느낌이 너무나 선연했다. 그럼, 딘은? 몸이 차갑게 식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적당하던 물이 갑자기 견딜 수 없이 찼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난치지 마. 하나도 재미없으니까.”
떨리는 마음이 목소리가 되어 나갔다. 숨이 가빠왔다. 꼭 이런 일이 있었다. 딘이 샘을 혼자 두고 달아났던 일이. 바비의 폐차장, 산처럼 쌓인 자동차들의 무덤 한가운데 샘을 떨어뜨려 두고서였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예상해볼 수는 있었다. 그 무렵 샘은 딘이 눈에서 보이지만 않아도 참지 못했다. 거의 24시간을 형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었다고 할 만큼. 한참 또래와 놀고 싶을 나이, 껌딱지처럼 떨어지지 않는 동생이 버겁기도 했을 것이다. 샘은 하루 종일 딘을 찾으며 울었다. 바비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딘을 찾아서 온 동네를 들쑤시고서야, 제 형을 눈앞에 데려다 놓고서야 울음을 그쳤다. 하도 울어대서 눈이 퉁퉁 부은, 탈진할 지경이 된 동생을 보고 딘이 더 놀라 경기를 했다. 작은 손 가득 형이 옷자락을 쥔 샘은 그날 잠들 때까지 그것을 놓지 않았었다.
“딘, 딘! 제발…, 형!”
다섯 살, 그때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샘이 갈급하게 형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은 샘을 대신해 형을 찾아줄 사람도 없었다. 흔들리는 시선이 짙은 색깔의 호수 안쪽으로 떨리는 시선이 닿았다. 안쪽으로는 가지 말아. 보기보다 깊으니까. 이대로 정말 형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현실이 된 공포가 단숨에 샘을 압박했다. 감히 가지면 안 될 것을 탐한 죗값이 딘의 목숨이라면…. 두려워서 다리가 떨렸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꿈속의, 심장을 뜯긴 딘의 텅 빈 눈동자가 눈앞을 어른거렸다.
“Happy birthday, 새미!”
다음 순간, 물속에서부터 불쑥 딘이 부풀어 올랐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샘이 비틀거리며 무릎을 짚었다. 어지러움을 동반한 토기가 깊은 데서부터 차올랐다.
“미친 새끼야!”
그 분노를 토해내듯 와락 소리를 질렀다. 눈동자에 맺혔던 물방울이 빠르게 부풀어 넘쳤다. 물기 젖은 원망 담긴 시선에, 장난기 머금고 씩 벌어졌던 얼굴이 빠르게 잦아들었다. 시계를 보며 서두르자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놀랐어? 아니, 나는 그냥 너 놀래켜주려고,”
“씨발, 네가 형이야? 개새끼, 죽어버려!”
놀란 심장이 터져버릴 듯 빠르게 뛰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샘은 놓칠세라 딘을 잡았다. 억울했다. 놀란 심장이, 백일하에 드러나 버린 진심이 억울해 죽을 것 같았다. 하필이면…. 동생을 상대로 이딴 질 나쁜 장난이나 치는 철 덜 든 형이라는 사람이, 제 모든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
“미안, 샘. 미안해. 괜찮아?”
“흑…. 씨발, 꺼져버려, 개새끼야, 흑.”
울컥, 울음이 터져 나왔다. 스스로 어찌할 수도 없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지난 2주간의 후회와 걱정이, 그 전부터 시작된 받아들여지지 못할 감정의 무게가 이제야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새미, 미안하다니까. 진정 좀 해봐, 응? 미안해. 형이 어떻게 해줄까, 응? 샘?”
딘이 안절부절못하며 샘과 시선을 맞추려 들었다. 커다란 손이 계속해서 샘의 떨리는 팔을 쓸어주었다. 어릴 적 놀란 샘을 달래주던 손길 그대로였다. 아직도 어린 샘을 대하듯 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다는 듯이.
샘이라고 땀에 젖어 달라붙는 머리가 귀찮지 않은 게 아니었다. 샘이 눈을 찔러대는 머리칼을 잘라버리지 않는 건, 그것이 향하지 않아야 할 곳을 바라는 샘의 시선을 차단해주는 꽤 쓸모있는 방패막이 되어주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연거푸 피하는 시선 안으로 물에 젖은 붉은 입술이, 걱정을 담은 아름다운 눈동자가 들었다. 노력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오히려 독한 말로 상처나 주었다. 혹여 들킬까 봐, 제 마음이 향한 곳을 알아채고 난 후로는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왜 하필이면, 어째서 제 형인지 몰랐다. 빌어먹을 고대 신화의 주인공이 될 생각 따위 없었는데 왜.
샘이 시선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이런 순간에조차, 딘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키는 둥그렇게 뜬 달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아름다운 딘과 추악한 자신을. 이제껏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던 샘의 세상이 발아래 무너지고 있었지만, 달빛은 아무렇지 않게 그저 두 사람을 비출 뿐이었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샘은 어느 때보다 더, 어떤 것보다 명확히, 눈앞의 존재를 갈망했다.
“새미?”
보름달은 예로부터 악한 것을 깨운다고 했다. 이제까지 잘 감추어왔던, 감히 내어 보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감정이 달빛 아래 스멀거리며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마음 약해진 샘을 점령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실,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었으니 당연했다. 다만 잘 감추어왔다고 착각했을 뿐이었다. 이내 심장까지 먹혀버린 샘에게 선택지란 많지 않았다.
한순간 딘을 향한 샘의 시선이 빛을 달리했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딘을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다. 맹수 앞에 놓인 초식동물처럼 딘은 움찔거리지도 못한 채 그에 사로잡혔다.
“새미….”
실제로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샘이 떨리는 손으로 뺨을 감싸 쥘 때도, 도톰한 입술을 눈물로 축축해진 입술이 덮을 때도.
“흐읏.”
귓가로 감겨드는 신음에 감은 눈앞으로 불꽃이 튀었다. 언젠가 딘이 보여주었던 불꽃보다 뜨겁고 아름다운 불꽃이. 속에서 스스로를 죽여가던 열기가, 지랄발광하며 날뛰던 마음이 눈앞에서 팡팡 터졌다. 놀라 벌어진 입술 안으로 파고든 샘이 기껍게 뜨거운 살결을 취하였다.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이 거기 있었다. 열일곱, 샘 윈체스터 난생처음 가장 원하는 존재에게 닿은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