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그곳에 황제가 있었다.
WINCEST
- 1악장 Maestoso(장엄하게, 장대하게)-
샘의 손 끝에서 지휘봉이 떨어졌다. 관객석은 환호하고 객석에 앉은 이들 모두 하나같이 일어나 박수를 치느라 그 찰나의 순간을 보지 못한 것 같았지만 맨 앞자리의 콘서트마스터를 위시한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는 그 장면을 목격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샘이 지휘를 마치고 숨조차 고르지 못한 채 파르르 손끝을 떨다가 이내는 지휘봉을 놓치고 멍하니 바닥을 응시하기 시작한 그 순간을. 연주원 전원이 그 장면을 목격하였으나 다들 격양된 연주를 마치고 마치 무언가에라도 홀린 듯 박수소리조차 그들을 깨우지 못하여 놀라움의 표정을 얼굴에 담지 못하였을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이어진 격정적인 연주를 끝마친 딘이 숨을 고르느라 피아노 앞에서 아직 일어서지 못한 탓에 지휘자가 아직 돌아서지 않고 관객의 환호에 화답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기이해 보이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딘은 고개를 들지 않고도 샘을 들여다보듯 알고 있는 듯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환호를 마주한 채 그대로 샘을 포옹했다. 아직도 지휘석에서 뒤돌아 고개를 숙인 채인 샘은 음악의 여운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고 음악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그 유명한 이름을 알고 있는 두 천재 형재의 감격스러운 포옹에 관객의 박수소리는 더욱 크게 퍼져 나갔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이상한 점은 없을 터였다. 최연소 지휘자. 유럽지역 3대 콩쿨을 모두 휩쓸고 혜성처럼 데뷔한 어린 지휘자와 그보다도 먼저 피아니스트로서 이름을 날린 형과의 콜라보 공연. 게다가 이 커다랗고 웅장한 무대가 샘에게 얼마나 각별한 의미를 가질지 객석에 있는 사람들 혹은 온라인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모든 사람들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법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샘의 데뷔가 결정되고 딘은 무리해서 대륙을 넘나드는 공연일정을 변경해가며 샘의 첫 무대를 빛내 주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은 기대에 차 환호했고 신문에서는 연일 둘의 환상적인 협연에 대한 배경과 둘의 어린시절, 하찮은 가십까지 샘과 딘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그 화제로 가득한 첫 공연의 마지막 곡은 리스트의 메피스토. 그 유명한 파우스트의 악마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었다.
쇄도하는 인터뷰를 거절하고 간신히 땀에 절은 모습으로 꽃다발을 받아 들고 관객석에 가까스로 짧은 인사만을 건넨 채 대기실로 돌아온 샘은 소파에 묻혀버릴 듯 깊이 앉아 숨을 골랐다. 지휘봉을 쥐었던 손바닥 안쪽이 타는 듯 뜨거웠다. 문양을 남겼을까 두려워 그 안을 들여다보지도 못하면서 샘은 그 계약을 떠올렸다. 샘의 첫 데뷔무대의 곡이 악마의 이름을 한 것은 당연했다. 그의 눈이 검었던가? 자신을 악마라 칭하지 않았어도 영혼에 새겨진 듯 완연하고 강력한 그의 존재는 뇌에 각인된 듯 남아있었다.
샘은 고개를 들어 대기실 한켠의 거울을 통해 제 눈을 들여다보았다. 심연과도 같은 어둠을 담은 그 눈안에서 샘은 공포를 읽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샘은 바닥에 피를 흘린 채 쓰러진 딘의 죽음 앞에 악마와 거래를 했던 열살의 자신의 모습을 기억했다. 허황된 모험 같은 것을 꿈꾸던 어린 꼬마의 위험한 도전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결과로 낳았다. 끔찍한 상상이 머리를 가득 채우던 영원 같던 시간이 끝나면 정말로 이루어진 그 절망적 상황에 딘의 이름을 목이 쉬도록 불러도 숲속 깊은 곳에서 누구 하나 구해줄 사람도 없이 딘의 숨소리는 차츰 잦아들다가 이내 멈추었다. 샘은 공포와 충격에 휩싸여 비명을 질렀고 그 때였다.
그가 찾아온 것은.
‘꼬마야. 거래를 할래?’
그것은 딘의 얼굴을 하고 딘의 목소리를 하고 물었다.
‘형을 살려줄게. 네가 원한다면.’
샘이 듣고 싶던 그 모든 말이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너는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눈물로 얼룩진 샘의 얼굴이 의문을 담고 그를 향하자 그는 딘의 얼굴을 하고 생경한 표정으로 웃었다.
‘오, 새미. 그런 얼굴 하지 말고. 너는 내가 이끄는 대로 최고의 음악을 지휘하면 돼. 그럼 10년이 지나는 날 딘을 다시 온전히 네 것으로 되돌려 줄게.’
그리고 그는 샘에게 빛나는 무수한 성공을 ‘보여’주었다. 환호와 갈채 끝없는 영감과 재능 그저 성공뿐인 미래. 그리고 그가 새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모든 성공에도 네가 타락하지 않는다면 너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형을 되살리게 되는 거야.’
샘은 아직 어린 나이였음에도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정확히 읽어내었다. 파우스트. 그에게 들이닥친 악마의 시험. 그가 원하는 것은 샘의 영혼이었다. 샘은 악마와 계약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계약을 하는걸까.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보면 악마는 그런 인간의 약한 부분을 파고든다. 샘에게는 그것이 딘이었다. 딘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직 제 팔 안에 끌어안긴 채인 피투성이가 된 딘의 모습과 기이하게 웃는 딘을 번갈아 보던 샘은 자신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는 것을 알았다. 샘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샘의 발치까지 다가와 무릎을 꿇고 샘과 눈을 맞춘 그는 Good boy. 하며 작게 웃고는 계약서 대신이야. 라는 말과 함께 딘의 모습을 하고 샘에게 입맞췄다.
그가 보여주던 모든 환영의 끝에 항상 딘과 함께하는 열망의 미래가 있는 것을 샘은 감지했고 그래서 그 입맞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았기에 샘은 황급히 몸을 떼었다. 그의 입술이 유난히 비틀린 채 비웃음을 담았다는 생각이 들 때에 그는 사라지고 딘이 다시 숨을 들이켰다. 샘은 딘의 이름을 부르며 딘을 끌어안았다. 차가워졌다고 생각했던 딘의 몸에 온기가 돌아왔다. 그것은 차마 감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감격을 가져왔다. 샘은 딘을 되살렸다. 딘이 그것을 기억하던 못하던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샘의 귓가에는 아직도 그의 경고가 생생히 남아있었다.
‘잊지마. 10년이 지나는 동안 네가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딘은 언제든지 죽어버릴 거라는 걸. 네 곁에 살아있는 딘은 온전한 딘이 아니라는 걸.’
샘은 두 손바닥을 넓게 펴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날의 사고 이후 두 형제는 이제껏 보인 적 없던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선보였다. 딘은 배운 적도 없던 피아노를 아름다운 선율로 연주했고 샘은 이 세상의 모든 음율을 한 번 듣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그대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두 형제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없었고 그 날 이후로 둘은 성공의 가도를 달렸다. 경쟁자조차 없는 완벽한 성공이었다.
그러나 샘은 항상 두려웠다. 제 곁에 있는 딘은. 실은 정말로는 딘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악마가 경고했던 대로 지금 눈 앞에 있는 딘은 ‘온전한’ 딘이 아니니까. 가끔씩 선뜻한 눈빛을 하고 저를 바라보는 딘이 정말로 딘인지 아니면 ‘그’인지 샘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럴때면 피투성이가 된 딘을 끌어안은 그 때에 딘의 얼굴을 하고 발치까지 걸어왔던 ‘그’를 떠올리며 샘은 한기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샘의 데뷔무대가 정해지던 날. 딘은 축하인사를 겸하며 콜라보 공연을 청했다. 협연할 곡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메피스토’. 악마와의 계약을 담은 그 곡을 분석하고 연주를 위한 준비를 할 때면 샘은 어디까지가 그의 계획인지 어디까지가 신의 계획인지 혹은 제 의지가 여기에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세상의 정점을 찍고 두려울 것이 없는 자리에 섰으나 온통 몸을 지배하는 것은 공포였다.
똑똑.
대기실에 노크소리가 울리고 들어오라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딘의 초록색 눈동자가 샘을 담았다. 축하해. 하는 해사한 얼굴에는 티조차 없어서 샘은 자신이 조금전까지 떠올렸던 그 과거의 모든 일들이 실은 자신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나의 딘은 죽은 적이 없고 여기에는 악마가 없다. 그런 안도를 하고 싶어지는 충동. 그러나 샘은 확실히 느꼈다. 바로 이 자리에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가 함께하는 기운.
샘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약속한대로 10년이야. 내 딘을. 돌려줘”
샘이 무대에서 놓친 지휘봉을 건네주러온 듯 자연스럽게 방에 들어서자 마자 딘이 흰색의 그것을 샘에게 건네었을 때 샘은 말을 건넸다. 그리고는 간절히 바랐다. 딘이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새미. 꿈이라도 꿨어? 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안도감을 주기를. 그 다정한 초록색 눈동자에 조금도 변함이 없기를.
그러나 그는 그때처럼 비틀리게 웃었다. 이제 더 이상 샘은 눈앞의 그를 딘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 2악장 Allegrissimo (매우빠르게)-
딘은 샘의 형으로 살던 시간들을 기억했다. 오로지 그 어떤 의도도 없이 그저 샘의 형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그 짧은 시간들을 말이었다. 딘에게 지워진 태초의 임무는 샘을 지키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 임무는 샘을 지배하라는 것이었으며 그리고 최종 목표는 그를 섬기라는 것이었다. 눈이 보석처럼 빛나는 꼬마가 동생으로 태어나 처음 꼬물거리며 제 손가락을 잡았을 때에 딘은 초록색 눈동자를 빛내며 새미. 언제나 너를 지켜줄게. 하고 말했다. 그것은 제 주인에 대한 예의와 존경의 표현이었으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경애의 표식이었다.
딘은 샘을 온전히 제 것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알고 있었다. 딘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사용하면 수만가지로 갈라질 수 있는 미래의 양상을 다 볼 수가 있었는데 그 셀 수도 없는 미래에서 샘은 딘을 목숨보다도 사랑했다. 그리고 그 미래의 갈래길에는 항상 같은 시작점이 있었다. 절벽에서 샘을 대신해 몸을 던져 사망하는. 혹은 사망할 뻔한 딘의 존재 같은 것들. 자연물을 조작하거나 우연을 가장하지 않아도 그 사건은 운명처럼 딘과 샘의 앞에 놓였다. 딘은 자신이 믿는 것이 신이 아님에도 이처럼 자연스러운 극단적 상황을 만들어낸 신의 계책에 때로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신은 샘을 사랑했고 그래서 그 애를 지옥의 황좌에 올릴 것이었다.
악마들은 기꺼이 그를 섬기리라. 딘은 절벽에 몸을 던지는 아찔한 순간 샘의 공포에 질린 눈동자를 맞이하고 이번 운명의 방향을 정했다. 딘은 샘을 공포로서 지배할 것이다.
“물론이지 새미.”
샘의 요구에 딘은 샘과 자신의 거리를 조금 더 줄였다. 한 걸음 더. 한 걸음 더. 샘의 눈빛에서 공포를 읽어낼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이제는 그 공포를 지워낼 순간이 왔다.
“계약대로”
한마디에 샘의 경직된 몸 위에 딘은 걸터앉아 그 때처럼 시선의 높이를 맞추고 그리고는 입을 맞추었다. 움찔거리는 샘의 기색에서 그때와 같은 거절의 기운을 찾지 못하고 이번에는 열망을 감지해내었고 딘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리고 샘에게 ‘보여’주었다. 자신이 그려낸 이 모든 순간들을. 샘을 가지기 위해 만들어낸 수많은 계획과 그리고 정말로 그가 원하는 그 장면을.
온통 황금색으로 치장된 드높은 황좌에 화려한 보관을 머리에 얹은 샘이 걸어올라갔다. 붉은 융단 위로 샘의 한 걸음이 걸어질 때마다 샘의 손가락에 끼워진 에머랄드색 반지가 찬란하게 반짝였다. 그 대관의 좌의 끝에 딘이 있었다. 그의 눈은 검었고 그리고 에머랄드처럼 초록으로 빛났다. 샘이 기억하는 어릴적 그리고 지금의 딘의 눈동자처럼.
-3악장 Largo appassionato (느리고 정열적으로) –
긴 입맞춤이 끝나면 숨이 가쁜 듯 혹은 감정적 격양에 몸을 떨 듯 샘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딘을 들여다보았다.
“딘?”
샘의 입술 너머로 첫 음절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부터 딘은 기꺼움에 웃음지었다. 드디어 샘은 모든 전생과 후생을 기억하며 그리고 이제 그에게 운명지워진 그 길을 향해 걸을 것이다.
“응. 나의 황제.”
수 백 번의 삶에서 몇 번이고 같은 선택을 하게끔 만들어낸 운명이 겹치고 쌓여 만들어 낸 지옥의 황제의 자리에 샘은 오를 것이다. 매 선택에서 샘은 악마와 계약을 맺었고, 그러나 결코 신을 혹은 악을 대변해 타락하지 않았으며 그리고 늘 같은 이를 선택해 같은 결과를 내었다. 그 수 만 번의 선택의 끝에 딘은 지휘봉 끝에 매달린 동그란 부속을 떼어내어 손에 갈무리 한 뒤 그것을 준비한 것으로 변화시켰다. 에메랄드 반지였다.
아직도 태초부터의 기억을 되찾아가느라 보석처럼 빛나는 샘의 눈동자는 혼돈에 쌓여 있었고 그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은 딘은 그의 오른쪽 네번째 손가락에 황제의 반지를 끼웠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그를 통해 울려퍼지리니,
보라, 이 아름다운 이가 지옥을 다스리리라.
그리고. 그 곳에 황제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