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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CEST

 - Dear,

 

 "또 타자기 앞에 붙어있는 거야?“

 

 타자기에 종이를 새로 넣어 몇 글자 적어넣던 샘에게 퉁명스럽게 향하는 말. 서재에 들어서며 딘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을 몸짓과 목소리에 모두 담아 전하고 있었다.

 

 "왜 그런 말투야? 타자기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요즘 누구에게 연서라도 띄우는지 타자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어난 샘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무엇이든. 샘의 관심을 가져가는 것엔 자제할 수 없이 질투가 난다고 말하면 여전히 아이 같다며 말할 것 같아 딘은 제 마음에 가득 찬 감정은 아닌 척 눌러두며 다른 이유를 찾아 말했다.

 

 "꼭두새벽부터 타자기 앞에 앉아있으니까 그러지."

 "아…벌써 동이 텄나…?"

 "뭐야, 밤새 잠도 안 자고 이 앞에 앉아있었단 말이야??"

 

 이번엔 딘의 이성이 손쓸 틈도 없이 뚝 끊겨 나갔다. 지난달 여행상에게서 우연히 구한 고대 주술서를 해석하느라 줄곧 밤을 새웠던 샘이기에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예전부터 샘의 수면시간은 딘에게 아주 큰 걱정이자 제일의 관심사였다. 유난히 얕은 잠을 자고, 그조차도 마음껏 누리는 시간이 적은 샘이었으니까. 자기 몸 상하는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일에 몰두하는 형을 걱정하는 건 언제나 딘의 몫이었다.

 

 "주술서 해석 끝나면 제대로 자기로 약속했잖아!"

 

 제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화부터 내며 목소리가 높아지는 딘을 샘은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앉은 자리에서 조용히 저를 바라보기만 하는 샘이 이상했는지 딘도 평소 레파토리처럼 시작되던 잔소리를 뚝 끊고 물었다.

 

 "왜, 뭐. 잘못한 줄은 알아서 조용히 듣고만 있는 거야?"

 "반은?"

 "나머지 반은 뭔데 그럼"

 "누구 동생인지 몰라도 참 잘생겼다, 하는 생각?"

 

 다정하게 전해오는 말에 순간 귀까지 붉어지는 건 딘이었다.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감정을 감춰야 한다고 교육받으며 자란 캠벨가 사람답지 않게 샘은 자기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샘의 애정을 가장 많이 받는 이는 하나뿐인 동생인 딘이었고. 주변인들도 모두 익숙해진 일이었다. 샘 캠벨이 하나뿐인 동생 딘 캠벨에게 아주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는 건. 그리고 그만큼…어쩌면 그보다 더 큰마음으로 형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딘도 다른 이들에겐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늘 이런 식이지."

 "내가?"

 "내가 형한테 약하다는 걸 알고 이러는 거잖아."

 "그래서, 봐줄 마음이 들었어?"

 

 미소를 머금은 채 저를 올려다보는 눈동자. 샘은 딘이 어린 시절부터 늘 우러러보던 이였다. 고작 네 살 터울이라 그만한 차이가 나기 어려운 나이일 수도 있었겠지만, 딘에게 샘은 이미 완벽한 존재였다. 모든 면에서 진심으로 존경하고 높이 올려다볼 수 있는 사람. 언제나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올리면 그곳엔 항상 샘이 있었다.

 

 해서 딘은 이런 순간들을 좋아했다. 앉아있는 샘 곁으로 다가가 책상에 걸터앉은 채 형을 내려다보는 순간들을. 약간의 시선 차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정이 마음을 자극하곤 했다.

 

 촛불이 일렁이자 샘 눈동자 색도 오묘하게 빛을 바꾸는 듯 보였다. 잡화상점에서 들여놓은 지구본 색과도 닮은 것 같고, 푸른 하늘을 향해 활짝 핀 해바라기 같기도 했다. 샘은 늘 딘의 눈을 보며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색이라 말했지만, 딘은 샘이 스스로의 눈동자 색을 똑바로 마주 볼 일이 적기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떠올릴 수 있는 색 중 샘 캠벨의 눈동자 색만큼 오묘하고 아름다운 빛은 없었으니까.

 

 "불공평한 싸움이야."

 "어째서?"

 "내가 매번 질 수밖에 없잖아."

 

 딘이 홀린 듯 상체를 숙이며 말하자 샘이 피식 웃으며 그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평소보다 짧게 닿았다 떨어진 시간에 딘이 의아한 눈빛을 하니 그의 착장을 찬찬히 살피는 샘이 있다.

 

 "평소랑 다른 느낌인데."

 "티가 나?"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나는 알지. 딘, 너에 관한 일이니까."

 

 샘의 눈동자에 걱정이 깃들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딘은 일부러 힘을 더 실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벼운 헌팅이야. 사전 조사도 철저히 했고. 오늘 저녁까진 돌아올 수 있어."

 "나는 잘 모르겠어…아직도."

 

 대대로 '지식의 사람들'이었던 캠벨 가문은 세상에서 감추어졌으나 반드시 정리되고 기록되어야 하는 지식을 계승하는 것을 가업으로 여겨왔다. 남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지식을 다루는 가풍은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손을 더럽히는 '헌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곤 했고, 그랬기에 Men of Letters의 일원이 되기보다 헌터로 진로를 정한 딘을 그들 부모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 딘, 너도 네 형 샘처럼 우리 가문의 일에 몰두할 수는 없는 거니?

 

 어릴 때부터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리더십으로 지식의 사람들을 이끌 차기 수장으로 내정된 샘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 샘은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자랐고, 항상 기대치 이상의 놀라움을 안겨주곤 했다. 그런 샘의 동생인 딘에게 부모님과 가문 사람들, 더 나아가 지식의 사람들에 몸담은 이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건 모르지 않았지만, 그대로 따를 생각은 전혀 없었다.

 

 - 지식의 사람들은 이미 훌륭한 차기 수장이 있잖아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요?

 

 형제 사이의 루머를 바라던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딘은 샘에게 질투나 열등감 같은 걸 느껴본 적 없었다. 그가 보기에도 샘은 지식의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으니까. 그저 형이 대단하고 멋지다 느꼈을 뿐이고, 때론 무거운 책임감을 홀로 지고 가려는 어깨가 안쓰러웠을 뿐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짐을 함께 나누어질 존재가 되어주겠단 다짐은 딘에겐 당연한 것이 되었다.

 

 - 나는 꼭 형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 이미 충분히 도와주고 있는 걸, 딘.

 - 형이 정말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거야.

 

 서재 청소를 도와주다 갑작스레 다짐하는 어린 동생을 보며 샘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꼭 그런 존재가 되지 않더라도 너는 이미 충분하다는 마음을 가득 담고서. 딘은 갈증이 났다. 하루빨리 형만큼 자라서 힘든 일을 함께 지고 나아가고 싶었다.

 

 그랬기에 더욱 헌팅에 몰두했다. 제 안에 자리 잡은 다짐을 하루라도 빨리 현실로 당겨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었다. 그럴수록 보편적인 '지식의 사람들' 이상향에서는 멀어졌지만,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딘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제 앞에 주어진 길을 기꺼이 걸어 나가는 샘처럼.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의 끝이 어디든 샘과 맞닿아 있으리란 사실을 의심해본 적 없었다.

 

 그들 가문과 왕래가 잦은 지식의 사람들 멤버들은 딘을 두고 우려하거나 못마땅해했다. 부모조차 크게 다르지 않은 시선으로 딘을 겉돌게 했지만, 그는 언제나 이곳에 속해있었다. 누구보다 깊고 단단하게. 딘에게 온기 가득한 안정감을 준 샘이 있었으니까. 그만큼은 헌팅에 몰두하고 헌터로서의 삶을 갈망하는 딘을 비판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

 그저 걱정하기만 했을 뿐.

 

 "부모님처럼 반대할 걸, 후회해?"

 "글쎄…."

 

 한창 부모님과의 갈등이 커졌을 땐 헌터를 계속하겠다면 이 집에서 나가란 소리까지 들었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캠벨 가의 일원으로 누리고 산 것도 많았지만, 딘은 물질적인 것에 미련을 두는 성격은 아니었다. 가족과 연을 끊고 집을 나간다면 그가 후회할 것은 오직 하나. 샘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뿐이었다.

 

 - 이번엔 진짜로 집을 나가드려야 할 것 같은데.

 - 그래서 벌써 짐 챙기려는 거야?

 - 잘못했다간 맨몸으로 쫓겨날 거 같으니까. 헌팅에 필요한 건 미리 챙겨둬야지.

 - 준비성 좋아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 내가 나간다는데 형은 별로 신경도 안 쓰는 거 같네?

 - 신경 쓸 게 뭐 있어.

 

 방문에 기대 살벌하게 짐을 챙기던 딘을 지켜보던 샘이 한쪽 어깨를 들었다 놓으며 눈짓했다. 딘의 맞은편에 자리한 샘의 방. 활짝 열린 문틈으로 평소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딘은 샘의 방 역시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마치 오랫동안 자릴 비울 사람처럼.

 

 - 형…?

 - 그럼 내가 너 혼자 나가게 둘 거라고 생각했어?

 - 하지만, 형은….

 - 어디서 누구와 함께할지는 내가 정해.

 

 만약 평범한 하루였다면 그날 밤 그들은 나란히 캠벨 가에서 나왔을 것이다. 평범한 하루였더라면….

 

 그러나 운명은 순탄하지 못했고 그날 샘과 딘은 부모를 잃었다. 그들이 오랜 시간 행적을 좇고 있던 어둠의 존재에게. 복수는 자연스레 형제의 공동 목표가 되었고, 샘은 아버지의 공백을 채우며 지식의 사람들을 이끄는 수장직을 받아들였다.

 

 딘 역시 그가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샘이 모든 지식을 관장하는 자리에 올랐다면, 그의 지식이 필드에 닿을 수 있는 다리 역할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고 있던 딘이기에 그는 현장을 지휘하는 헌터가 되었다.

 

 그렇게 벌써 3년이 흘렀고, 딘은 자타공인 베테랑 헌터가 되었지만 헌팅을 나설 때마다 샘의 걱정은 날로 더해지는 것만 같았다.

 

 "너 혼자 나서게 두는 게 내키지 않아."

 "그럼 같이 따라나서기라도 하게?"

 "그래야 하나 갈등하지. 매번, 매 순간을."

 

 책상 위에 놓인 헌팅 나이프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고민이 가득했다. 손잡이에 미색 진주가 아름답게 세공된 나이프는 호신용이라며 딘이 샘에게 선물했던 것. 샘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책상 가까이에 두는 것을 보면서도 딘은 형에겐 역시 칼보단 깃펜이 잘 어울린다 생각하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금방이라도 칼을 들고 딘을 따라나설 것처럼 헌팅 나이프에서 떼지 못하는 손길에 딘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불안해졌다. 샘이 생각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길까 봐. 샘의 생각이 깊어지면 그가 원하지 않는 결론까지 다다를 것 같아 칼을 만지작거리던 샘의 손 위로 딘이 제 손을 겹쳐 올리곤 속삭였다.

 

 "절대 안 돼."

 "어째서? 너는 되고 난 안돼?"

 "어, 안돼. 형은 무조건 안전해야 하거든."

 "그런 법이 어딨어."

 "여기."

 

 샘과 손을 겹쳐 헌팅 나이프를 그러잡은 딘이 날카로운 칼끝을 정확히 제 심장 위로 겨누며 말했다. 샘이 안전하지 않다면 그건 딘에게 죽음이나 마찬가지인 거라고. 그것만큼은 세상 전부를 준다 해도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러니까 절대 안 돼, 샘."

 

 형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을 부르며 그 안에 담아 전하는 진심을 샘도 알아들었는지. 결국 따라나서겠다는 마음은 오늘도 한번 양보하며 샘이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대신 오늘 운세 정도는 봐줘도 되지?"

"나야 영광이지. 천하의 샘 캠벨이 직접 봐주는 타로라니, 사람들이 부러워 죽을걸?"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샘은 여러 분야를 섭렵한 실력자답게 타로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실제로 딘은 아직도 샘만큼 정확하게 타로를 읽어내는 이를 본 적 없기도 했고.

 

 그는 샘이 타로카드와 함께하는 순간을 좋아했다.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이 화려한 문양의 카드를 섞고 펼치고 하나씩 꺼내 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황홀한 기분까지 들어서. 딘이 힘있게 쭉 그어낸 직선과 같다면 샘은 섬세하고 유연하게 그려낸 곡선과 같아서 타로가 샘과 참 잘 어울리는 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샘이 자연스레 딘의 손을 겹쳐 펼쳐진 카드 위로 쓸어내리듯 움직였다. 사실 딘은 타로에는 별다른 일가견이 없어 카드에서 느껴지는 기운보다 저와 맞닿은 샘의 체온에 정신이 더 팔렸지만, 적당히 끌리는 곳에서 손을 멈추니 샘이 아래에 놓인 카드를 뒤집었다.

 

 "The Moon…."

 

 매번 샘에게 설명을 들었으면서도 쉽게 잊는 건, 내용보다 목소리에 젖어 들어서가 아니었을까. 딘은 샘이 타로를 봐줄 때마다 머리로 기억하는 내용보다 카드를 내려다보는 샘의 표정을 읽어 내용을 먼저 점쳐보곤 했다. 지금, 조용히 카드를 내려다보는 샘의 표정이라면… 대충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조심할게. 약속해."

 

 그를 올려보는 눈동자가 걱정을 가득 머금고 있었지만 샘은 고개를 끄덕였다. 딘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순간들이 좋았다. 샘이 그를 걱정하면서도 끝까지 그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줄 유일한 존재라는 걸 확인받는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게."

 

 다치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라는 샘만의 당부였다.

 

***

 

 돌아올 수 있다고 장담했던 저녁에서 한참 지난 다음 날 새벽.

서늘한 공기가 몸에 기분 나쁘게 달라붙는 듯한 마물의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어딘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휘청이고. 오랜 시간 그들 가문이 지낸 캠벨 가의 대저택 앞에 다다라서야 딘은 제 상태를 점검하듯 이리저리 살피며 먼지를 털어냈다.

 

 "읏…젠장,"

 

 가벼운 솔트 앤 번이라 여겼으나 생각보다 악령의 원한은 깊었고 오래 머문 공간에서의 힘은 상당했던 악질적 케이스. 책장과 난로를 오가며 던져지느라 팔 곳곳은 찢어졌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욱신거리는 옆구리는 굳이 옷을 들춰보지 않아도 얼마나 흉하게 멍이 들어있을지 뻔했다.

 

 요즘 따라 '일반적인' 케이스라 여겼던 사건들이 그렇지 않은 스케일로 넘나드는 일이 늘었다. 마치 무언가 악령과 띵즈들을 부추기고 자극한 것처럼. 딘은 이것이 그만의 기우이길 바랐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큰일이 폭풍처럼 몰아칠 것이란 징조였으므로.

 

 작은 움직임에도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킬 만큼 잔 부상이 많음에도 부지런히 행색을 정돈한 딘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샘 서재의 창문. 일렁이는 촛불은 샘이 여전히 잠들지 않은 채 서재에 머물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샘,"

 

 사실 그에게 대단한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오래도록 가문의 사명으로 내려온 지식의 사람들 일에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었고. 그런 딘이 숨 막히는 저택을 떠나지 않은 것과 헌터가 된 것은 모두 단 한 사람의 존재로 이어지는 이유였다.

 

 "샘…."

 

 세상 따윈 알 바 아니었다. 세상의 종말? 안타깝지만 그래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세상에 속한 이들 중 샘이 있었고, 샘은 누구보다 세상 그리고 그 안에 사람들을 아꼈다. 그러니 딘에게도 세상은 그만큼 소중한 무게와 존재감을 갖게 되었지. 그의 세상은 처음부터 단 한 사람, 샘이었기 때문에.

 

 "들키지 않아야 할 텐데…."

 

 크게 숨을 들었다가 내쉬고 자세를 바로 하여 저택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올랐다. 샘의 서재 앞에서 제 모습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점검하고. 힘주어 밀고 들어선 나무문에선 끼이익 기묘한 소리가 울렸다.

 

 "아직도 안 자고 뭐 해?"

 "약속 지키는 중이었지."

 

 그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찬찬히 살피는 샘의 눈길을 받으며 딘이 피식 웃었다. 자리를 지키고 앉아 차분하게 그의 말에 대답하고는 있지만 샘이 그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얼마나 조바심내고 있었는지 눈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을게.'라는 말로 그를 배웅했던 샘이었다. 만약 딘이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샘은 잠 한숨 자지 않은 채 이곳에서 촛불을 켜두고 그를 기다렸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헌팅 필드에서 아무리 험하게 구르고 버거운 상대를 만난다 해도 딘이 악착같이 돌아오게 하는 원동력. 그를 기다리고 있을 샘. 그 기다림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싶지 않았다.

 

 "이리 와."

 "어쩐지 강아지 부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론데?"

 "아니면 내가 갈 거야."

 

 샘이 책상 곁에 세워둔 지팡이에 눈짓하는 걸 본 이상 딘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 날 캠벨 저택에서 있었던 화재. 깊은 밤이었지만, 그날따라 깊게 잠들지 못했던 어린 샘은 복도를 걷던 낯선 이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뒤이어 들려오는 익숙한 문소리.

끼이익, 기묘한 소리를 내며 열렸던 나무문은 바로 샘이 머무는 지금 이 서재의 문이었다. 그들이 어렸을 적엔 아기 딘이 지내던 방이었던 이곳으로 낯선 이가 들어갔다는 걸 직감한 샘은 겁도 없이 곧장 이방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딘의 아기 요람을 내려다 보고 있던 수상한 남자.

샘은 크게 소리 질러 집안 사람들을 모두 깨웠고, 그들 부모가 침입자와 대치했던 밤. 혼란 속에서 고작 네 살이었던 샘은 어린 동생을 안고 창문 밖으로 도망쳤다.

 

 - 괜찮아, 딘. 내가 널 꼭 지켜줄게.

 

 끝까지 그들을 따라오던 남자를 피해 2층 높이에서 떨어지던 샘이 제 품에 안긴 딘에게 속삭이던 말. 작은 몸으로 동생을 얼마나 단단히 끌어안았는지. 의식을 잃을 채 화단에서 발견된 샘의 품 안에서 딘을 떼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했다.

 

 덕분에 딘은 크게 다치지 않았으나, 샘에겐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상처를 남겼던 그 날. 딘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나이였음에도 그날의 상흔은 지독히도 선명하게 남았다.

 

 "자, 만족해?"

 "네가 무사한지까지 확인해야 만족스럽겠지."

 "네, 엄마."

 "까불지 말고."

 

 샘이 본격적으로 살피기 시작하자 딘은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항상 놓여있는 샘의 지팡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독수리 모양이 은세공으로 들어간 손잡이. 이것도 딘이 샘에게 선물한 많은 것 중 하나였다.

 

 저택 밖으로 나도는 시간이 많았던 딘은 헌팅 때문만이 아니라 여행을 다니는 일도 잦았다. 샘 때문에 가문을 뛰쳐나가진 않았지만 그와 맞지 않은 사람들이 가득한 저택이 갑갑한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으니까. 숨이 끝까지 차올라 더는 버티기 힘든 한계점에 다다를 때마다 딘은 여행을 떠났다. 집을 잊기 위한 여행길에서 더욱 간절하게 채워지는 건 샘을 향한 그리움. 그럴 때마다 딘은 헌책방에 먼지 쌓인 고서라든가 그 지역 고유의 문양이 새겨진 장신구 같은 것들을 사곤 했다. 선물의 주인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언제나 샘이었다.

 

 - 그래서 이번엔 어떤 선물 사 왔어?

 - 선물을 굉장히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 이곳을 떠나서도 네가 항상 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아니까?

 - 그것도 너무 당당한 추측 같은데.

 - 그럼 아냐? 나는 늘 네 생각 하며 지냈는데.

 

 정말 캠벨 가문에 이런 성격이 날 수 있는 걸까. 딘은 그를 향해선 늘 감출 것 없이 표현해오는 샘이 신기했다. 형에게 그는 언제나 늘 당연한, 가장 깊고 가까운 존재라는 걸. 덕분에 그들 사이의 감정에 있어서도 딘은 혼란을 겪을 일이 적었다. 그저 당연한 흐름 같았을 뿐.

 

 - 아니었음 좋았겠지만, 나도 형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일부러 자존심을 세우듯 심드렁하게 짓는 딘의 표정에 샘이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 '내가 어떻게 해도 형이 웃으며 받아주니 내 성격이랑 버릇이 나빠지는 거야.' 딘이 툴툴거리자, '그럼 그것까지도 내가 다 받아줄게.' 샘은 역시나 웃으며 말했다. 딘이 결국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절대 형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럴 생각도 없었고.

 

 - 이번에도 아주 멋진 선물을 골라왔네.

 - 마음에 들어?

 - 네가 준 건데. 당연하지.

 

 샘이 포장을 벗겨낸 선물을 손으로 천천히 쓸었다. 딘은 샘의 손가락이 지팡이를 따라 쭉 내리긋는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샘의 큰 손이 부드럽게 감싸 쥔 손잡이에 새겨진 독수리 공예. 힘과 인내를 동시에 담고 있는 그들 집안의 상징을 알아본 듯 샘은 미소지었다. 저도 그 미소를 똑같이 따라 그리고 있다는 걸 모른 채로 딘이 제안했다.

 

 - 다음엔 형도 같이 가자.

 - 어딜?

 - 어디든. 이 좁은 서재만 아니라면 어디든.

 

 넓은 저택에 샘이 서재로 쓸 수 있는 방은 얼마든지 넘쳐났다. 굳이 이 작고 좁은, 과거 화재사건까지 있었던 이 방이 아니더라도. 그럼에도 샘이 딘의 '아기방'으로 쓰이던 이곳을 서재로 삼은 건 많은 의미가 깃들어있는 것이리라. 샘은 딘을 안고 이 방을 도망쳤던 그날 이후로 쭉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딘을 찾아 이곳에 다시 돌아올 존재를.

 

 그땐 너무 어려 딘을 안고 도망치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올 테면 얼마든지 오라는. 이번에야말로 절대 놓치지 않으리란 샘의 의지이자 도발이기도 했다.

 

 "아…!"

 "안 되겠다. 윗옷 벗어."

 "그건 너무 갑작스러운 명령인데…?"

 "장난으로 대충 넘길 생각 마. 옷 벗어. 아님 내가 할 거야."

 "네네, 수장님."

 

 어차피 상처를 감출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샘은 딘의 작은 상처 하나도 절대 놓치는 법이 없었으니까. 과장된 한숨을 쉬며 옷을 벗던 딘이 순간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쓰자 샘이 익숙하게 나머지 움직임을 도왔다.

 

 "표정만 보면 형이 더 많이 다친 것 같은데."

 "마음은 아마 내가 더 많이 다친 게 맞을 거야."

 "이런…."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손짓하는 샘에게 딘은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병을 집어 건넸다. 상처를 씻어내고 소독하는 약재. 헌터가 되겠다며 훈련을 시작한 이래로 상처를 쭉 달고 사는 동생을 위해 샘이 직접 만든 약들이었다.

 

 "씁-"

 "많이 아파?"

 "참을 만해."

 "저번에 칼에 맞아 돌아왔을 때도 그렇게 말했던 거 같은데."

 "당연하지. 딘 캠벨은 절대 나약하ㅈ…으읏!"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는 건 절대 나약한 표현이 아니야, 딘."

 

 상처에 박혀있던 조각을 빼낸 샘이 조곤조곤 말해왔다. 다음 상처로 넘어간 샘이 조금 더 깊게 한숨을 쉬는 걸 들은 딘이 먼저 선수 치듯 물었다.

 

 "담배 한 대 피워야겠는데."

 

 샘은 딘이 담배 피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처음 마주했을 때 샘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나이도 충분했고, 주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가 없었던 터라 찔릴 게 없으면서도 딘은 그 표정에 놀라 담배를 꺼버렸다.

 

 물론 그날 이후로도 딘은 담배를 계속 피웠고, 샘도 굳이 피우지 말라는 소리를 하진 않았지만. 샘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자제하게 되는 그런 게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굳이 허락을 구하듯 담배 이야기를 꺼낸 딘을 보던 샘은 책상에 놓인 작은 보관함을 열어 담배를 건넸다.

 

 "가만 보면 누구 책상인지 모르겠어."

 "뭐가?"

 "서재 책상 말이야. 여기 세워놓은 병들도, 저 담배 보관함도 거의 다 내가 쓰는 것들이니까."

 "네 것 내 것이 어딨어, 우리 사이에."

 

 그 말에 긍정하듯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샘은 한숨에 걸맞게 조금 더 심각한 상처들을 빠르게 치료해나갔다. 달그락달그락. 방 안에는 샘이 약병을 건드리는 소리와 상처에서 빼낸 조각을 책상 위로 던져놓는 소리만 울렸다.

 

 "내가 담배 피우는 게 왜 싫었어?"

 "싫은 적 없었는데."

 "처음에 보고 표정이 엄청 굳었었잖아."

 "그건…놀라서였지."

 "왜?"

 "그냥, 네가…벌써 그만큼 컸다는 걸 갑자기 깨달아버린 기분이었거든."

 

 딘이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한 샘은 늘 의젓하게, 어쩌면 태어난 순간부터 어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들던 형이었으니까. 딘에게 샘의 아이 같은 모습을 떠올리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반대로 샘에게 그는 늘 도망치던 밤, 품 안에 안겨있던 어린 아기에 멈춰있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담배 덕분에 샘이 그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라서.

 

 "다 됐다. 다른 데 더 불편한 곳은 없고?"

 "닥터 실력이 워낙 훌륭하셔서 충분하네요."

 "대충 넘기지 말고. 제대로 잘 느껴봐."

 "형은 가끔…."

 "응?"

 "굉장히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잘하더라."

 

 딘이 하는 말에 샘은 대답 없이 피식 웃었다. 평소 자주 짓는 따스한 미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 미묘한 차이는 오직 딘 만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아아, 일부러 노린 말이었구나. 딘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할 텐데 일단 한숨 자."

 "방금 그렇게 말해놓고 그냥 자라고?"

 "너 피곤해."

 "내 몸은 내가 더 잘 알거든?"

 "아닐 텐데."

 

 놀랍게도 그게 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으음…?'

 

 편안하고 아늑한……?!

흐릿했던 생각이 점차 또렷해지자 딘은 깜짝 놀라 감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눈을 번쩍 떴다. 시야에 들어오는 익숙한 풍경. 처음엔 여러 방지 문양이 그려진 천장이었고, 그다음 시선을 돌리면 알파벳 순서에 맞춰 책의 크기와 연도순으로 정리해 꽂아놓은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으로 산처럼 쌓여있는 '현재 해석 진행 중'인 고서들까지. 그는 아직 샘의 서재에 있었다.

 

 '하아…결국 잠들어 버렸네.'

 

 호기롭게 피곤하지 않은 척했던 사람은 어디 갔는지. 기절이라도 한 양 기억이 뚝 잘려 나간 걸 보니 정말 순식간에 잠들었나 보다. 샘이 불편한 다리로 그를 서재 소파까지 안고 왔을 생각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샘을 상기하며 짜증스러운 마음을 털어냈다. 샘이야말로 딘이 자신의 다리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안해하며 뭐든 도우려 하는 걸 질색했으니까.

 

 실제로 샘은 딘이 선물한 지팡이 하나만으로도 장정 여럿을 거뜬히 제압할 만큼의 실력자였다. 때론 그 모습이 검을 다루는 기사 같기도 해서 좀 더 자주 보고 싶은 마음까지도 들 만큼. 딘에게 형은 '모든 것'의 스승. 그 범주에는 창술이나 검술도 당연히 포함이었다.

 

 '또 타자기 소리….'

 

 샘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책상 자리에선 타자기 소리가 타닥타닥 울려왔다. 정말 누구에게 글을 쓰기에 타자기에서 손을 뗄 줄 모르는지. 피어오르는 질투심을 감추지 않은 채 쏘아붙이려던 딘은 제 시선에 들어온 샘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무언가에 집중한 형의 옆모습은 딘이 오래도록 보고 자라와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것이었다. 생각에 잠겨 살짝 찌푸린 미간, 깊게 그늘진 그림자 아래로 빛나는 눈동자. 수려하게 높이 뻗은 코끝과 그 아래에 자리 잡은 고집스러운 입술까지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 온 얼굴임에도 감탄은 익숙해질 기미가 없었다.

 

 타자기를 내려보느라 살짝 내려온 옆머리가 귀찮았는지 고개를 살짝 흔들었지만 머리는 앞으로 더 쏟아져 내려오고. 의자 뒤로 몸을 더 젖히며 기대앉은 샘은 담배를 들지 않은 손으로 머리를 정돈했다.

 

 아아… 그래, 담배.

 

 어른으로 인정받는 나이가 되었을 때, 딘이 가장 먼저 잡았던 건 독한 술병이 아니라 담배였다. 굳이 이유는 캐물을 필요도 없었지. 다른 이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경박하거나 거칠게만 느껴졌는데, 같은 물건이 샘의 손가락 사이에 걸쳐지면 전혀 다른 느낌이 들곤 했다.

 

 샘에게 남들과 다른 분위기가 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과 다른 모습을 한 담배 파이프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양과 만나는 곳에서 제작되었다던 파이프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피우는 아래로 굵게 휘어진 형태와는 많이 달랐다. 직선으로 곧고 길게 뻗은 유려한 샘의 파이프에는 검은색 바탕에 은세공이 들어가 멀리서 보아도 화려함이 눈에 띌 정도였다.

 

 '나도 저런 분위기를 내고 싶었던 건데.'

 

 샘이 저 파이프를 쥐는 건 악마의 유혹이 아닐까 싶을 만큼. 딘 뿐만 아니라 담배를 피우는 샘 모습에 홀리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것도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깊게 들이마셔 머금었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며 공기 중에 담배 연기를 흩어내는 샘의 자태는…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들곤 했으니까.

 

 지금도 그랬다. 더는 견딜 수 없게…자꾸만…. 샘을 조용히 지켜보던 딘이 순간 놀라 숨을 멈추었다. 고개를 젖혀 허공에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놓던 샘이 다 알고 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기 때문이었다.

 

 "몰래 지켜보는 취미가 생긴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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