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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CEST

“딘, 샘을 잘 부탁한다.”

케이트가 언제나처럼 상냥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케이트에게 씨익 웃어보인 딘은 케이트의 품에 안긴 젖먹이, 애덤 밀리건의 뺨을 손끝으로 간질였다.

 “샘이 그 얘기 들으면 또 엄청 투덜거릴걸요. 그 꼬맹이는 자기가 절 돌본다고 생각한다니까요.”

 “완전히 틀린 소린 아닌데?”

 딘의 어머니 메리가 딘의 등을 툭 건들며 웃었다. 그녀의 반대편 손에는 2주간의 여행을 위한 커다란 짐 가방이 들려있었다.

 딘이 입을 삐죽이며 변명을 하기도 전에 존 윈체스터가 메리의 뒤에서 나타났다. 메리의 남편이자 딘의 아버지인 존은 알파 특유의 위압적인 분위기를 늘 두르고 있었다. 존이 자기보다 키가 작은 딘을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딘 윈체스터, 내가 한 말 기억하고 있지?”

 “네, 아버지. 샘을 잘 보살피라고요.”

 “그리고?”

 “사고 치는 건 아버지 돌아오실 때까지 미뤄두라고요?”

 메리와 존, 케이트가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양친을 떠나 보내는 시간은 예상했던 것만큼 길지 않았다. 곧 케이트의 남편인 맥스가 공항까지 타고 갈 차가 도착했음을 알리며 들이닥쳤고, 윈체스터 부부와 밀리건 부부는 양손 가득 짐을 든 채 부랴부랴 현관을 나서야만 했다. 딘은 아기를 안은 케이트의 짐을 대신 들고 두 부부를 따라갔다.

5명분의 짐을 트렁크에 쌓는 동안 누구 하나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딘은 존이 가방으로 테트리스를 하는 모습에 낄낄대며 케이트의 곁에 섰다. 딘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애덤의 보드라운 뺨을 만졌다.

 “초저녁인데 샘은 벌써 자요? 왜 마중도 안 나온 데요?”

딘의 물음에 케이트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애덤만 데려간다고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야.”

 “우리 꼬맹이가 사춘기가 시작됐군요.”

 케이트는 갓 성년이 된 딘을 가만히 쳐다봤다. 애덤을 어르는 딘의 손길은 숨길 수 없는 다정함이 있었다.

 “샘을 잘 부탁할게.”

 케이트의 진지한 목소리에 딘이 되려 눈살을 찌푸렸다.

 “겁나게 갑자기 왜 이러세요. 제가 샘 돌본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요 뭘. 걱정하지 마세요.”

 아닌 게 아니라 딘은 혼자 있어도 될 나이부터 샘을 돌보곤 했다. 알파와 베타가 만난 윈체스터 부부와 한 쌍의 베타인 밀리건 부부는 이웃사촌 간으로 딘이 기억하는 한 언제나 사이가 좋았다. 두 부부가 사이 좋게 나란히 집을 비우면 샘을 돌보는 일은 딘의 의무이자 좋은 용돈 벌이었다.

 다행히 딘은 샘이 퍽 마음에 들었다. 상대가 마음에 든 것은 딘뿐만이 아니었다. 얌전한 척하지만 생각보다 까다로운 샘이 딘을 친형처럼 잘 따른다는 것을 모르는 밀리건이나 혹은 윈체스터는 없었다.

케이트가 극성스러운 부모가 된 것을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그렇긴 해도,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우는 건 처음이잖니.”

 “제가 드디어 성년이 됐으니 그런 거죠. 솔직히 전 어머니 안식년만 되면 네 분이서 저흴 두고 냅다 도망가실 거로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기다리신 게 더 신기한데요.”

 “얘는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네.”

메리가 딘과 케이트 쪽으로 다가와 딘의 등을 밀쳤다. 케이트는 잠든 애덤을 대신 안아 차 쪽으로 가는 매리의 뒷모습을 홀린 듯 쳐다봤다. 짧은 침묵 후, 케이트가 딘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고마워 딘, 샘을 잘 부탁할게.”

 “알았어요. 샘이랑 있는 동안에는 사고 안 칠 테니까 제발 걱정 말고 가세요.”

 케이트는 웃으며 맥스와 메리, 존이 기다리고 있는 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운전사가 공항을 향해 차를 돌리는 동안 딘은 그 자리에 서서 메리가 웃을 때까지 과장스레 손을 흔들었다.

 

 차를 떠나보낸 딘은 자기 집이 아닌 옆집, 밀리건 가족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기지 않은 문을 열자마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뾰로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샘이 보였다.

 “그런 표정 하지 마, 새미.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 더 웃겨 보이니까.”

 딘의 농담에 샘이 더 불어터진 만두 같은 얼굴을 했다. 샘은 어쩐지 억울한 눈으로 제 곁에 다가온 딘을 올려봤다. 딘은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샘의 어깨를 꾹꾹 밀며 좁은 층계에 억지로 엉덩이를 붙였다. 딘이 어설픈 위로를 건넸다.

 “애덤이 있어도 너희 부모님은 널 사랑하셔.”

 자기가 생각해도 조금 유치한 대사였다. 샘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는지 너무 바싹 붙어 앉은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샘이 코웃음 치는 소리가 귀에 새겨질 것처럼 똑똑히 들렸다.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동생도 없으면서. 그리고 나는, 나도 그런 생각은 안 해. 나 그렇게 유치하지 않아.”

 “그러셔? 그럼 왜 배웅도 안 할 정도로 기분이 나빠?”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했거든?”

 샘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딘이 앗 뜨거라 하며 과장스레 몸을 뒤로 빼는 척을 했다.

 “하이고, 그래 너 똑똑하다. 어른스럽다. 우리 새미.”

 뺨을 툭툭 건드리는 딘의 손길에 샘이 몸서리를 치며 딘을 밀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딘과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다가 또래보다 왜소하기까지 한 샘은 낟알을 털어낸 지푸라기처럼 볼품없었다. 지금은 베타인 것에 적응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모두가 알파로 발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딘을 샘이 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샘이 불필요하게 허우적댈수록 딘은 더욱 짓궂어질 뿐이었다. 딘은 늘 그랬던 것처럼 간지럼을 태우기 위해 샘의 옆구리를 지분거렸다. 그 얌전한 샘 밀리건이 욕설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만해…! 꺼져! 빨리 형네 집으로 가버려!”

 숨을 색색 대는 샘은 얼굴은 물론 귀와 목까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갰다. 딘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줌마가 널 잘 부탁한다고 신신당부하셨는데 첫날부터 널 혼자 둘 것 같아? 꿈 깨렴 새미야. 나 오늘 여기서 잘 거야. 내일이랑 모레도.”

 순간 샘의 시선이 딘이 느낄 수 있을 만큼 흔들렸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은 샘의 표정에 당황한 것은 딘이었다. 딘은 조금 비참한 심정을 느끼며 조심스레 물었다.

 “왜 그래?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나랑 있는 게 그렇게 싫으면, 밤에만 여기 있을게. 너 괜찮은지만 확인하고 조용히 사라질 테니까…”

 “아냐! 그런 거 아니야!”

 딘의 옷자락에 왜소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샘의 커다란 손이 매달렸다. 의아한 빛이 역력한 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던 샘이 도망치듯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 싫은 거 아니야.”

 딘은 ‘형 잘못이 아니야.’하고 속삭이며 귀까지 빨개진 샘을 물끄러미 관찰했다. 샘은 언제나 복잡하고 약간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딘이 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딘은 씨익 웃으며 샘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난 또 우리 새미가 자길 업어 키우신 이 형님의 하늘 같은 은혜를 다 잊어버린 줄 알았잖아. 그럼 왜 이렇게 날카로운데? 설마 여자 때문이야? 네가 좋아하는 수학 수업을 같이 듣는 가슴 큰 여자애라던가……”

샘이 역겹다는 표정을 하며 딘의 팔을 밀었다.

 “그딴 소리 좀 하지 마.”

 “왜? 혹시 여자애가 아니라 남자애야?”

 귀신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얼어버린 샘의 표정에 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그런 거야? 까칠하게 구는 것도 이해가 가네. 이야, 우리 새미, 좀 놀랍다?”

 “…시끄러워!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좀 내버려 둬!!”

 샘은 기어이 딘을 밀치고 발을 쿵쿵대며 계단을 올라갔다. 딘은 끝까지 샘의 뒤통수에 대고 농담을 해댔다.

 “알았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할게. 걱정 마. 새끼손가락 둘이 걸고 꼭꼭 약속할 테니까.”

 “형 진짜 짜증 나.”

 “나도 알아.”

 샘은 위층의 자기 방으로 사라졌고 낄낄대던 딘은 거실로 가 밀리건 가족의 커다란 티브이를 켰다. 존과 달리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맥스는 거실에 멋진 평면 티브이를 장만해 둔 터였다. 딘은 티브이를 틀자마자 나온 스포츠 채널에 금세 정신을 빼앗겼다. 익숙하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시청하는 유료 스포츠 채널이라니. 그리 애 답지도 않은 샘을 애 보기 해야 하는 것 정도는 불평할 것도 못 됐다.

 

 딘의 예상대로 2주는 긴 시간이 아니었다. 배달 음식과 커다란 티브이, 비디오 게임은 시간을 죽이기에 더없이 좋은 조합이었다. 샘도 딘과 빈둥대는 것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일주일 가까이 지났을 때 즈음, 딘은 피자는 지겹다고 투덜대는 샘을 위해 시내로 운전을 했다. 두 사람은 샘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식사하고 딘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디저트까지 먹었다. 존의 멋진 자동차에 딘과 나란히 기대 아이스크림을 먹는 샘은 퍽 행복해 보였다.

샘은 배달 피자에 대해 불평하긴 했어도 딘과 함께 식어빠진 피자를 먹으며 밤늦은 시간까지 게임을 하거나 티브이를 보는 것에는 군소리 하나 없었다. 딘은 게임기에 피자 기름을 묻힌다며 잔소리하는 샘을 발로 밀어내고는 꿋꿋이 게임기 버튼을 눌렀다. 샘은 욕설 비슷한 소리를 꽥꽥댔지만 웃음을 숨기지는 못했다.

 

 그날 결국 누가 게임에서 이겼는지 딘은 기억하지 못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두운 거실에는 딘이 보자고 우겼던 DVD 초기 화면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딘은 몇 번 더 눈을 깜빡이기 전까지는 자기 품에 샘이 안기다시피 기대있다는 것도 몰랐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딘은 샘을 밀어내는 대신 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샘의 머리카락은 손가락에 저절로 감기는 것처럼 부드러웠고 가슴께에 닿는 숨은 마음까지 노곤해질 정도로 따뜻했다.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커다란 강아지 같아. 딘은 잠에 취한 미소를 지었다.

 잠이 완전히 깰 때까지 샘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칠게 샘을 밀어냈다.

 “내 옷에 침 흘리지 마!”

 “-ㅁ-뭐?”

 불쌍한 샘. 샘은 소파에서 굴러떨어지다시피 바닥으로 내려왔다. 잠이 덜 깬데다가 뺨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샘의 얼굴은 정말인지 볼만했다. 딘은 화가 난 척 미간을 구겼다.

 “어떻게 날 깔아뭉개면서 잘 생각을 해?”

 샘은 사고회로가 불타버린 로봇처럼 겁먹은 얼굴로 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샘의 진지한 반응에 장난칠 맛이 떨어진 딘이 김 샌 표정으로 샘에게 손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딘의 손을 맞잡은 손은 샘의 왜소한 몸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컸다. 딘은 손쉽게 샘을 자리에서 일으켰다.

 “너 원래 잠에서 깨면 이렇게 둔해? 네 방 가서 자. 올라갈 때 계단 조심하고.”

 딘이 간식거리로 엉망이 된 거실 테이블을 정리하는 동안 넋이 나가 있던 샘이 간신히 입을 뗐다.

 “……형 때문에 괜히 바닥 굴렀잖아.”

 “그러니까 누가 내 애착 티셔츠에 침 흘리래?”

 차가운 체 해봐야 딘이 샘의 억울한 눈망울을 이겼던 적은 없었다. 딘은 한숨을 쉬며 피자박스를 구겼다.

 “알았어, 네가 테이블에 머리라도 박았으면 큰일 날 뻔했지. 미안하다 그래.”

 “말로 퉁치려고?”

 “그럼 뭐?”

 아직 잠에서, 혹은 꿈에서 덜 깬듯한 샘의 눈이 열로 반짝였다.

 “내일 또 시내 가서 저녁 먹자.”

 “또? 돈이 좀 빠듯한데.”

 딘이 눈썹을 치켜세우자 샘이 황급히 말을 바꿨다. 샘의 표정은 평소의 새침한 성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간절했다.

 “그럼, 아이스크림이라도.”

 딘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새미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구나? 그래 엉아가 돼지저금통을 털어서라도 우리 새미 아이스크림은 사줘야지.”

 “……형이 돼지저금통이 있긴 해?”

 돼지저금통에 알뜰살뜰 동전을 모으는 것은 딘 답지 않은 짓이었다. 저녁 한 끼 먹을 돈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샘의 돼지저금통을 쪼개는 것이 빠를 것이다. 딘은 씨익 웃으며 샘의 머리를 엉망으로 헝클어트렸다.

다음날 샘과 딘은 아이스크림은 물론 저녁까지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극에 눈이 있었다면 그런 두 사람을 찾아갈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귀하의 부모님께서 타신 비행기가 추락해……

 전화로 들리는 말은 딘이 지금껏 들었던 것 중 가장 비현실적인 소리였다. 뉴스를 보는 취미가 없던 딘은 지구 반대편에서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었다. 딘은 이 버겁고 괴로운 정보를 도무지 삼킬 수가 없었다.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탑승자가 모두 죽어? 모두? 전부?’

 딘은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하면서도 폐가 찌그러져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전부 죽었다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맥스랑 케이트도? ? 애덤도?’

 딘은 할 수만 있다면 아침에 먹었던 시리얼을 토해내고 싶었다.

 

 감당하기 힘든 비극은 시간과 기억을 지우기도 하는 법이었다. 지옥과도 같은 며칠이었다. 온갖 서류에 서명을 해주고 나니 거래의 대가처럼 부모님의 관이 돌아왔다. 관 안에 들어있는 것은 메리와 존이었던 일부에 불과했다. 딘은 눈물조차 흘릴 수가 없었다.

 윈체스터 부부와 밀리건 부부, 그리고 ?애덤. 다섯 명의 장례식이 한 곳에서 치러졌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의 닿지 않는 위로나 주제넘은 참견에 딘은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다. 장례식을 어떻게 준비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창백한 낯빛으로 선 교회 단상은 세상 끝으로 떨어지는 절벽이나 다름없었다. 무감각하게 준비해간 글을 읽던 딘은 밀리건 가의 어른들 사이에 유령처럼 앉아있던 샘과 눈이 마주쳤다.

샘,

 더는 울 수도 없을 것처럼 초췌한 샘을 보고서야 딘은 그동안 잊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딘이 우는 모습을 보며 값싼 동정을 수군댔지만 딘은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상황이 더 끔찍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은 차라리 오만에 가까웠다. 메리와 존의 장례가 끝나고도 친척들은 딘의 집을, 이제는 딘만의 집을 떠나지 않았다.

 평소 보험과 거리가 먼 윈체스터였지만 외국에서는 비행기 티켓 가격에 보험이 포함된 경우가 있던 모양이었다. 목숨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다고 했건만 보험료는 나왔다.

 친척들은 이제 갓 성년이 된 딘이 윈체스터 부부의 유산과 보험금을 손에 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설교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혹은 대학을 졸업하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돌려받는 게 어떠냐는 소리도 나왔다.

 딘은 누가 그를 돌봐야 하는지로 싸우는 친척 어른들 사이에서 시체처럼 싸늘하게 앉아있었다. 어른들은 급기야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딘은 살면서 자기 집안에 이렇게나 많은 사건·사고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원색적 비난이나 욕설은 차라리 단순할 지경이었다.

 비명과 고함, 욕설이 비참하게 오갔다. 딘은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그대로 집에 불을 질러버리고 싶었다. 삶이란 것이 이렇게 짧은 순간에 이렇게나 바닥까지 떨어질 수 있었구나.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비참할지도 모른다는 교만한 생각을 한 딘은 뒤늦게,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 샘을 떠올렸다. 샘은-, 미성년자이자 딘보다 더 많은 보험금을 받은 샘은 지금 어떤 일을 겪고 있을까. 딘은 만류하는 친척 어른들을 밀치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밀리건 가족의 집과 윈체스터 가족의 집은 그 분위기만큼이나 달랐다. 하지만 거칠게 현관문을 열어젖힌 순간, 딘의 눈앞에는 그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샘, 샘, 새미.

 멱살을 붙잡고 싸우는 어른들 뒤로 또래보다 왜소한 샘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것처럼 움츠린 채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딘은 밀리건가의 어른들을 밀치고 샘에게 다가갔다. 누군가가 딘을 말리려 했지만 딘을 따라온 윈체스터 쪽 사람이 집안으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분위기가 이상하게 엉켰다.

 윈체스터와 밀리건, 밀리건과 윈체스터의 사람들이 싸우기 시작한 난장판 사이에서, 딘은 온몸으로 샘을 끌어안았다. 샘은 딘의 품 안에서 덜덜 떨리는 숨을 삼켰다. 딘은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어떻게 내가 널 잊고 있을 수 있었을까.

 “새미.”

 딘의 부름에 샘이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샘의 표정에 딘은 샘의 머리조차 쓰다듬을 수 없었다. 딘이 샘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우리 둘이 살자.”

 샘은 대답 없이 딘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  *  *

 

 그 후로 이어진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친족들을 제쳐놓고 겨우 성인이 된 이웃집 남자에게 양육권이 쉽게 넘어올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샘이 완고하게 딘과 함께 살고 싶다고 주장했고 케이트의 막냇동생인 샘의 이모가 후견인 역할을 하기로 하자 조금씩 상황이 풀렸다.

 “혹시 두 사람이 혹시 매칭 알파와 오메가일 확률은 없습니까?”

변호사가 딘과 샘의 이모인 캐롤린에게 물었다. 잠시 서로를 마주 본 캐롤린과 딘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샘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모두 베타였어요.”

 “저희 아버지는 알파였지만 어머니는 베타셨고 전 발현된 형질이 없어요.”

 샘과 딘의 상황을 알고 있는 변호사가 아쉬운 표정을 했다.

 “매칭 알파와 오메가라면 법적인 보호자-피보호자 관계를 손쉽게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딘은 변호사의 말이 영 불편했다.

 “저흰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압니다. 그래도 그게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라서요.”

 딘이 샘의 보호자가 되기 위한 빠르고 쉬운 길은 없었다. 길고 지독했던 소송이 끝나기까지는 딘과 샘이 부모를 잃은 일상에 적응하고도 남을 시간이 걸렸다. 윈체스터 가족의 집과 밀리건 가족의 집을 정리하고 그들만을 위한 집을 꾸렸을 때, 두 사람은 각자의 침실에서 밤새 눈물을 흘렸다.

 그 후로는 부모도 없고 소송도 없는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조금 익숙해지려 하면 꼭 한 번씩 새로운 사건이 터졌다. 샘이 갑작스럽게 알파로 발현했을 때 샘과 딘 모두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었다. 크고 작은 사건 속에 일상과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물결처럼 흘렀다.

 수년 후, 샘은 마침내 성년이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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